서론: 훈요십조, 실체와 논란의 시작
훈요십조(訓要十條)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대 왕들에게 남긴 10가지 유훈으로, 국가 경영과 후속 통치자들에게 경계와 지침을 전했다는 점에서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다큐먼트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 중 제8조의 ‘차현(車峴) 이남’ 등 남쪽 지역 사람 등용 금지 조항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그리고 이 조항이 상징 혹은 은유적 지역차별의 의도를 담고 있는지에 관한 진위 논쟁과 사회적 파장이 장기간 이어져 왔습니다.
현대에 들어 훈요십조 8조는 호남·충청 등 남부 지역 차별 혹은 분열의 근거로 오용돼왔다는 비판, 반대로 승자 중심 사관에서 후대 조작된 위작이라는 의혹, 궁극적으로는 지역 정체성과 사회 갈등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회적 논쟁을 야기해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훈요십조의 조작설 논쟁, 해당 조항의 은유적 해석과 지역차별 문제를 구글 SEO 가이드에 맞춰 체계적으로 살펴봅니다.
1. 훈요십조 조작설의 배경과 핵심 논쟁
(1) 조작설의 등장과 근거
여러 사료와 연구에서는 훈요십조, 특히 제8조가 태조 시대 원본이 아니라 후대에 조작·개작됐을 가능성을 지적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 이마니시 류 등은 ‘후백제 출신 세력 등용이 활발했던 태조대 실상’과 ‘8조의 등용 금지령’이 명백히 상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진본(원본)은 10세기 거란의 침입 때 소실, 현전본은 11세기(덕종 3년 1034년) 후손이 공개
- 후백제 지역·호남 출신 인사 신숭겸, 박영규, 장화왕후 등 다수 인물 등용 및 왕실 혼인 실태
- 영암, 나주, 영광 등 남부 지역 세력이 태조 건국과 통합세력의 핵심
- 8조 내용과 달리 고려 왕실은 연합정책, 혼인정치 등 지역 포용적 방식 추구
- 훈요십조가 실질적으로 후대까지 엄격히 실행되지 않았다는 점
- 8조 최초 공개 과정이 불분명하며, 최재안 등의 특정 인사가 문서 발견 과정에 개입
(2) 지역차별 조항의 곡해 및 정치적 악용
훈요십조 제8조는 “차현 이남과 공주강 밖은 산천·인심이 배역(배신)하니 지도자권력에 등용하거나 혼인을 결탁하지 말 것”이라는 취지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후대에
- 지역 갈등‧차별 구조의 근거자료
- 조선·현대 사회의 동서 분열, 호남 소외 등의 ‘역사적’ 근거로 오용
학계 일각, 시민사회 등에서는 이 점을 들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사료가 조작·비약적으로 해석돼 지역감정의 재생산에 이용된다”며 심각성을 지적합니다.
2. 훈요십조 실체 논의와 역사 해석
(1) 전통적 해석과 현대적 비판
일반적으로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은 훈요십조를 태조의 유훈으로 채택해 왔으며, 8조의 지역차별 취지도 ‘실존’하는 것으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 실제로 왕건이 남북·동서 연합정책을 폈으며,
- 고려 200여 년간 남부 지역 인사가 국정·왕실 중심에 오르는 데 큰 제약이 없었음,
- 결정적 사료와 문헌 부재,
라는 연구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학계의 일부는 “훈요십조 전반은 왕건의 유훈이 맞지만 8조 등 특정 조항은 후대 권문세족이나 사료 집필자의 이해 관계에 따라 추가·편집·왜곡 가능성”을 높게 봅니다.
(2) 은유적, 함의적 해석 가능성
8조의 ‘산천 지세, 인심 배역’과 같은 표현은 당시 풍수적 세계관, 내란과 반란을 경험한 혼란기적 불신, 상징적 지역 경계(정치적 위험요소 신호) 등 은유적 또는 당대 맥락을 반영하는 언어일 가능성도 논의됩니다. 단편적 해석이 장기간 차별적 레토릭으로 고착됐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됩니다.
(3) 역사적 악용, 사회적 영향
조선·일제·현대에 이르러 특정 정치집단·기득권 세력이 훈요십조 8조를 지역차별, 지방배제, 동서갈등 합리화에 활용한 역사적 사례가 다수 보고됩니다.
이로 인해 호남 등 남부 지역 사람들의 정체성·역사적 자긍심이 훼손, 분단 이후에는 분열과 갈등의 ‘상징 코드’로 기능해 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3. 훈요십조 조작설·차별 해석에 대한 주요 반론
- 사료상 조작·위작 자체를 입증할 직접 증거는 부족하며, 일각에서는 단순 문헌 분석 이상의 해석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
- 지역차별 금지의 직접적 실행 증거 부족: 실제 고려시대 지역차별이 제도화되거나 장기간 유지된 기록 부족.
- 일부는 훈요십조 정신을 “국가 존속·사회 통합을 위한 일시적 경계”로 보며 영구적인 차별 명분이 아니라고 해석.
결론: 훈요십조 논란, 현재적 의미와 역사 해석의 과제
훈요십조 조작설은 1,000년에 걸친 한국사의 주요 논쟁 중 하나입니다. 8조의 진위와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사료의 정확성 차원을 넘어, “사료 해석을 통한 현대 사회의 정체성, 분열, 갈등, 통합” 등 다층적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조작 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군(예: 이마니시 류, 이해준 등)과 사료 실체를 강조하는 견해, 그리고 은유적 지역차별의 사회·정치적 영향에 비판적인 시각이 혼재합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고문헌의 맥락적·비판적 분석과, 정치·사회적 목적의 악용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훈요십조 8조와 관련된 지역차별적 맥락의 해석은 실제 역사와 분리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갈등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오용하기보다는, 사료의 출현 맥락과 실제 통치 사례, 사회통합의 전략 등으로 평가하고, 분단 극복과 지역공동체 복원을 위한 통합적 역사 인식이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