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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 27

발해는 왜 스스로를 고구려의 계승국이라 했을까?

한국사에서 발해는 종종 고구려의 후계 국가로 소개되지만, 그 명확한 정체성과 대외 인식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발해가 일본과의 외교 관계에서 **스스로를 ‘고구려 계승국’이라 명시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 사서인 《속일본기(續日本紀)》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발해의 자칭 정체성, 외교 전략, 그리고 오늘날 역사적 의미를 조명해보겠습니다.발해의 건국과 정체성의 딜레마발해는 698년, 고구려 유민인 대조영이 동모산 지역에서 세운 국가입니다. 고구려 멸망(668년) 이후, 당나라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왕국을 수립한 발해는 초기부터 고구려와의 연결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측 역사서에서는 발해를 당의 지방 정권처럼 기술하거나, 거란·말갈계로 묘사하며 의도..

카테고리 없음 2025.07.28

고려 숙종과 의천의 화폐 개혁: 실패로 끝난 중세 개혁의 교훈

고려 숙종(재위 1095~1105년) 시기, 의천(義天)을 중심으로 추진된 화폐 개혁은 당시 경제 안정을 꾀하고자 하는 대대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개혁은 제도적, 사회적 기반이 미비하여 결국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본 글에서는 고려 중기의 화폐 개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추진되었고, 왜 실패했는지를 중심으로 한국 중세 경제사의 숨겨진 단면을 조명합니다. 의천과 화폐 개혁의 시대적 배경11세기 후반 고려는 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가 자리 잡고 있었고, 토지 겸병과 자연재해로 인해 농민 경제가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물물교환이 주를 이루던 경제 구조를 화폐 기반으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특히 숙종은 정치적 안정과 왕권 강화를 위해 경제 기반 정비가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 화폐의 통용..

카테고리 없음 2025.07.28

고려말 홍건적과 왜구―내외 이중 위기와 대응전략

서론: 혼란과 도전의 고려 말, 내부 외부 이중의 위기14세기 중·후반, 고려는 국가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국내에는 원 간섭의 폐해와 권문세족의 전횡, 개혁 시도의 진통이 있었고, 외부로는 북쪽에서 홍건적(紅巾賊), 남쪽에서는 왜구(倭寇)가 연이어 침입하여 국토와 민생, 체제의 근간을 뒤흔들었습니다.홍건적은 중국 한족 농민 반란군이자 원 말 혼란기의 잔당 세력으로, 2차례 침공 끝에 수도 개경까지 함락시켰으며, 왜구는 일본 쓰시마 등을 거점으로 삼아 해안은 물론 조운선(곡식 운반선)과 내륙심지까지 유린했습니다.이중 위기 속에서 고려는 어떻게 대응했고, 결과적으로 어떤 교훈과 변화를 남겼는지 오늘날의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1. 홍건적 침공의 배경과 경과홍건적은 원나..

카테고리 없음 2025.07.27

삼별초의 강화~진도~제주 최후 항쟁과 그 역사적 의미

서론: 외세 침탈 속 마지막 불꽃, 삼별초 항쟁의 새로운 평가13세기 후반, 고려는 몽골(원)의 잇단 침공으로 국가주권과 존립마저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몽골과 수차례 강화와 항전을 반복하다 1259년왕족 항복, 1270년 개경환도를 결정하면서 고려는 사실상 원에 예속됐습니다. 이 때 ‘무신정권의 친위부대’에서 출발한 삼별초가 국가적 저항의 기치를 들고 일어섭니다.삼별초는 ‘강화~진도~제주’로 이동하며 3년간 국가 존엄과 민족 자주의 마지막 불씨를 지켰습니다. 그 항쟁의 실제 모습과, 오늘날 남은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삼별초의 탄생과 조직 특성삼별초는 원래 고려 무신정권(특히 최씨 정권)의 사병 친위대로, 야별초(夜別抄)로 출발해 좌별초, 우별초, 신의군(몽골포로 출신) 등으로 체..

카테고리 없음 2025.07.27

김부식이 정말 사대주의자인가―묘청과의 대립 재조명

서론: 자주와 사대, 한국사 최대 논쟁의 중심김부식은 고려 중기 개경 문벌귀족 세력의 대표자이자, 『삼국사기』라는 방대한 역사서를 남긴 인물입니다. 특히 1135년 ‘묘청의 난’ 진압과정에서 보여준 태도, 그리고 역사 편찬 방식 때문에 그는 오랜 세월 ‘사대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혀 왔습니다.반면 단재 신채호와 같은 민족주의 사학자는 묘청의 서경천도·독자적 연호‧금국정벌 주장(자주론)과, 김부식의 실리·화친적 정책 대립을 단순 ‘자주 대 사대’ 싸움으로 규정, 후대에 거대한 평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과연 김부식은 정말 사대주의자였는지, 묘청과의 대립을 통해 오늘날 다시 살펴봅니다.1. 김부식, 문벌귀족과 ‘실리 유학자’의 실체김부식은 고려 인종대 최고 권력자이자 유교적 합리주의자였습니다.송나라 사신 ..

카테고리 없음 2025.07.27

훈요십조 조작설 및 은유적 지역차별 해석 논란

서론: 훈요십조, 실체와 논란의 시작훈요십조(訓要十條)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대 왕들에게 남긴 10가지 유훈으로, 국가 경영과 후속 통치자들에게 경계와 지침을 전했다는 점에서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다큐먼트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 중 제8조의 ‘차현(車峴) 이남’ 등 남쪽 지역 사람 등용 금지 조항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그리고 이 조항이 상징 혹은 은유적 지역차별의 의도를 담고 있는지에 관한 진위 논쟁과 사회적 파장이 장기간 이어져 왔습니다.현대에 들어 훈요십조 8조는 호남·충청 등 남부 지역 차별 혹은 분열의 근거로 오용돼왔다는 비판, 반대로 승자 중심 사관에서 후대 조작된 위작이라는 의혹, 궁극적으로는 지역 정체성과 사회 갈등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회적 논쟁을 야기해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훈요..

카테고리 없음 2025.07.26

공민왕의 개혁과 고구려 영토 회복 시도의 실제 성과

서론: 혼란한 고려 말기, 개혁이 절실했다 14세기 고려는 위태로운 상태였다. 몽골의 지배 아래에서 왕권은 약화되었고, 권문세족의 횡포는 날로 심해졌다. 백성들은 피폐해졌으며, 외세에 의존하는 정치 구조는 고려의 자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공민왕(재위 1351~1374)**이다. 공민왕은 즉위하자마자 강력한 개혁을 단행하며 무너진 국가 체제를 바로잡고자 했다. 동시에 고구려의 옛 영토 회복이라는 대외 정책 목표를 통해 민족 자존심 회복과 북방 경계 강화를 꾀했다. 이번 글에서는 공민왕의 개혁 정책, 영토 회복 시도, 그리고 그 실제 성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본론 1: 공민왕의 내부 개혁 – 권문세족과 몽골 세력 척결 공민왕의 개혁은 내..

카테고리 없음 2025.07.26

원나라 기황후와 고려·중국·몽골의 역학관계

서론: 기황후,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중심에 서다14세기 동아시아. 그 중심에 “고려 출신의 황후”라는 전례 없는 위치에 오른 기황후(奇皇后)가 있습니다. 원(元) 황실의 최고 권력자이자, 몽골·중국·고려를 잇는 ‘핵심 교두보’ 역할을 했던 그녀의 등장은 단순한 파란이 아닌, 원·고려의 복잡한 종속 관계와 정치적 변동, 그리고 몽골과 중국 권력의 변화까지 동반시킨 국제 질서의 전환점이었습니다.이 글은 기황후가 어떻게 중국과 몽골 지배 엘리트 사회의 법칙을 뒤엎고, 고려, 그리고 원나라—몽골의 역학까지 변화시켰는지를 다루며,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그녀의 역사적 평가와 한중몽 삼국 관계의 본질을 조명합니다.1. 기황후의 출신과 부상기황후는 원래 고려 출신의 공녀였습니다. 당시 고려는 몽골(원) 제국에 정기적으로..

카테고리 없음 2025.07.26

고려대장경 이운(異運) 경로의 미스터리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이운(異運) 경로는 한국 고대 문화사에서 “미스터리”라 불릴 만큼 연구와 논란이 많은 주제입니다.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대장경 경판 8만여 장이 14세기 말~15세기 초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옮겨진 경로와 방식, 그리고 그 과정의 극적인 현실성·불가사의함이 고고학·불교사학·문화유산학에서 오랜 명제로 남아 있습니다.서론: 팔만대장경, 이운의 역사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팔만대장경은 13세기 고려 시대 대몽항쟁 중 강화도에서 조성된 한국 불교‧문화의 정수입니다. 그러나 조선 초기, 이 방대한 목판이 강화도에서 경남 해인사로 옮겨진 실제 경로와 방법, 완전 무손실 이송의 비결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 자체로 ‘고려대장경 이운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왜 ..

카테고리 없음 2025.07.25

풍납토성 등 서울 일대 백제 유적의 미스터리

서론: 서울 한강변, 감춰진 백제 왕성과 고대 도시의 비밀서울에 도심을 이루고 있는 송파구와 강동구 일대. 이곳에는 수천 년 수도 서울의 현대성 뒤에 숨겨진 깊은 역사가 존재합니다. 바로 한성백제 시대의 대표 유적인 풍납토성(風納土城)과 몽촌토성, 그리고 주변 고분군입니다. 이 유적지들은 단순한 성곽이나 방어시설을 넘어, 삼국시대 한강권 핵심의 경제와 정치, 문화 교류의 중심임을 보여주며, 여전히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고대사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풍납토성과 서울 일대 백제 유적들은 ‘위례성(慰禮城)’으로도 불리며, 백제 왕성이자 고대 동아시아 교류의 핵심 장소입니다. 하지만 이곳이 어떻게 고대 세계의 중심이 되었는지, 대규모 고대 도시의 존재가 왜 오랜 세월 주목받지 못했는지, 현대 발굴을 통..

카테고리 없음 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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